결혼을 하면서 혼자 지낼 때 쓰던 물건을 대부분 정리했다. 대신 아내와 함께 쓸 물건들을 구입했다. 나 혼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구입한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전까지는 내가 필요하면 사고,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았다. 또한, 내가 원하는 바를 고민해 그에 맞는 물건을 구매하면 됐다. 물건을 구매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내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산 물건은 몇 년이고 사용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물건을 구입하다 보니 잦은 마찰이 생겼다. 서로의 취향도 달랐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달랐고, 물건을 구매하는 방식도 달랐다. 나는 가성비가 좋은 물건을 구매하는 편이다. 디자인과 통일감도 중요하지만 내게 더 중요한 것은 가성비였다. 가격대..
가사분담을 다시 정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매일 삼시세끼의 식사를 준비하고, 아내가 청소와 빨래 등의 집안일을 했다. 요리는 내가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도 했고, 집안일은 무조건 아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식사 준비를 하겠다 했다. 아내도 좋다고 해서 요리를 뺀 나머지 집안일을 아내가 하기로 했다. 요리만 내가 하면 되기에 할 일이 별로 없어 보이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삼시세끼를 모두 집에서 먹기 때문에 매번 식사준비를 하려면 꽤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내가 하기로 한 일이니 당연하게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아내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여보, 밥 하는 거 힘들지 않아요? 밥을 내가 하는 게 어떨까?' 처음에는 신..
2018년 5월 17일 저녁 11시, 우리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서울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버스를 타고 일산으로 돌아왔다.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 앞에 섰다. 횡단보도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자 아내와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그때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우리를 향해 SUV 차량 한 대가 신호를 무시하고 돌진했다. 비가 와 우산을 쓰고 있어 차가 그대로 우리를 향해 직진하는 걸 보지 못했고, 피곤한 상태라 재빠르게 반응할 수 없었다. 내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순간 이미 차량은 아내에게 다가와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차량은 아내와 충돌 직전 핸들을 틀었고, 아내는 차량의 옆면에 부딪히고 몸이 돌아가며 넘어졌다. 교..
함께 한 시간이 길수록 많은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연애 초기에는 사소한 것에도 쉽게 감동한다. 기념일에 선물을 챙겨준다거나, 늦은 시간에 집에 바래다준다거나, 손편지를 써주는 일 등 사소한 행동에도 쉽게 감동을 느끼곤 한다. 물론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하지만 연애 기간이 길어질수록 연애 초기에 느꼈던 사소한 감동이나 고마움들은 점차 사라져간다. 기념일에 선물을 챙겨주는 일은 당연한 일이 되고, 집에 바래다주는 것, 손편지를 써주는 것, 추울 때 겉옷을 벗어주는 것 등 처음에는 당연하게 느끼지 않았던 것들이 당연해지기 시작한다. 연애도 이럴진대 결혼은 어떠할까. 가끔도 아니고 매일 얼굴을 보고, 함께 하는 시간은 훨씬 많아진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더욱 많은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12월, 벌써 한 겨울이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어제는 저녁에 눈이나 비가 올 수도 있다고 하더니 잠깐동안 폭설이 내렸다. 밖에 눈이 많이 온다는 짝꿍의 카톡에 커튼을 열고 베란다로 나갔다. 창밖은 마치 스노우볼을 흔들어 놓은 듯이 눈이 날리고 있었다. 나갈 일이 없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외출한 짝꿍이 걱정됐다. 하늘이 흐리면 우산을 가지고 나가라고 했더니 괜찮을 것 같다며 신나게 나가버린 짝꿍이었다. 날리는 눈발을 보니 짝꿍이 패딩을 가지고 싶어하던 때가 떠올랐다. 얼마 전이었다. # 롱패딩 "자기, 이 롱패딩 괜찮지 않아요?" 날씨가 추워지면서 그녀는 자꾸만 내게 롱패딩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패딩이 있음에도 겨울이 가까워오니 롱패딩이 가지고 싶었나보다. "응, 괜찮네요." 그녀가 보여준 패딩은 ..
집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서 나가는 돈도 많이 줄었다. 예전에는 매일 도서관에 나가 책도 읽고 작업도 했다. 아무래도 도서관이라 따로 지출하는 돈은 없었지만 집에서 도서관까지의 교통비와 매일 사 먹어야 하는 식사비, 종종 찾아오는 사람들과 만날 때의 커피값, 핸드폰비 등 아낄 수가 없는 지출이 있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집에 작업실을 차리게 되면서 교통비도 거의 사라졌고, 핸드폰비도 줄이고, 밥도 집에서 해결하니 식사비도 많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원래 지내던 곳과 먼 곳으로 이사를 와서 누구 한 명 만나러 나가기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커피값 등도 함께 줄었다. 많은 돈이지만 되도록 쓰지 않고 놔뒀더니 꽤 큰 돈이 모였다. # 우리를 위한 돈 결혼을 하면서 아내와 나의 수입은 '각자의 수입'이 아니라 ..
난 집에 있는 남자다. 물론 짝꿍이 돈을 벌어오고 나는 집안에서 집안일만 하며 노는 건 아니다. 짝꿍은 나가서 돈을 벌어오지만 나는 집안에서 돈을 벌어온다. 아직 내 수입이 많지는 않지만. 방이 두 개인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짝꿍의 배려로 큰 방은 침실로 사용하고, 작은 방은 내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 원래는 매일 아침 일찍 도서관에 출근하듯 나가서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공부도 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집안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집에서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짝꿍이 원하는 바였다. 그러다 보니 내가 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면 종종 청소기를 돌리는 소리나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가서 도와주려 하면 괜찮다고 들어가서 할 일 하라고 하곤 했다. 하지만 막상 짝꿍이 ..
결혼 후 처음으로 함께 맞이하는 짝꿍의 생일이다. 포스팅은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올린다. '부부란 무엇인가'라는 카테고리를 미리 만들어두고 이제서야 첫 글을 올리게 됐다. 평소에 쓰는 글들이 많다보니 글을 쓰려고 만들어놓은 모든 카테고리에 매일 글을 쓰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함께 맞이하는 생일, 나에게도 감회가 남다르지만 그녀에게는 얼마나 색다른 감정으로 느껴질까? 대단한 하루는 아니지만 특별한 하루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나만의 방식으로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주기로 했다. # 생일선물 생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생일선물이다. 생일은 특별한 날이기에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선물을 기대하게 된다. 평소에 아무런 선물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생일선물로 손편지만 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