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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17일 저녁 11시, 우리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서울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버스를 타고 일산으로 돌아왔다.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 앞에 섰다. 횡단보도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자 아내와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그때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우리를 향해 SUV 차량 한 대가 신호를 무시하고 돌진했다. 비가 와 우산을 쓰고 있어 차가 그대로 우리를 향해 직진하는 걸 보지 못했고, 피곤한 상태라 재빠르게 반응할 수 없었다. 내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순간 이미 차량은 아내에게 다가와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차량은 아내와 충돌 직전 핸들을 틀었고, 아내는 차량의 옆면에 부딪히고 몸이 돌아가며 넘어졌다. 교통사고는 나도 아내도 처음이었다. 순간 당황했고, 화가 났다. 차량을 세우기 위해 빠르게 차량을 따라가며 차를 두드렸다. 잠시 후 차는 갓길에 섰고, 난 다시 아내에게 달려왔다. 놀란 아내는 자리에 주저 앉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내 사고차량에서는 남자 운전자와 여자 동승자가 나왔다. 남자 운전자는 우리에게 와 죄송하다며 신호가 바뀐 것을 못봤다고 했다. 남자 운전자에게서는 술 냄새가 났다. 여자 동승자는 내게 '119에 전화해드릴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렇게 해달라고 하며 아내를 살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닌 것 같았다. 여기저기 통증이 있어보였지만 천천히 걸을 수는 있었다. 일단 도보로 자리를 옮겨 119를 기다렸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까.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바로 아내를 구급차에 태우고 나 역시 동승했다. 아내는 구급차에서 혈압 등 기본 검사를 했다. 놀랜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됐는지 나 역시 몸에 조금씩 문제가 느껴졌다. 머리가 멍했고, 손이 떨렸다. 차에 부딪힌 건지, 무언가에 부딪혔는지 갈비뼈쪽에 약간 통증이 있었다. 구급대원 분에게 이야기를 할까 했지만 일단 큰 문제는 없으니 아내에게 더 신경을 쓰기로 했다.


 잠시 후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저녁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응급실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접수를 해야 한다고 해서 나는 바로 접수를 하러 갔고, 아내는 휠체어에 앉아 경찰분들과 함께 있었다. 접수를 마치고 아내에게 가니 경찰분들께서 상황을 설명해주고 내일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조금 기다리니 진료 차례가 왔다. 휠체어에 탄 아내를 데리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아내의 상태를 살폈다.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와 부상 의심이 가는 부위를 살피고, CT와 X-레이를 찍었다. 다행히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교통사고이다 보니 검사결과가 괜찮다고 완전히 괜찮으리라고 믿을 수는 없었다.


 이럴 때는 대개 입원을 하지만, 놀란 아내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병원보다는 편안한 집이 나을 것 같았다. 아내도 그러자 했다. 병원을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시간은 이미 저녁 12시가 넘었다. 


 비에 젖기도 했고, 개운하게 자는 게 나을 것 같아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샤워를 했다. 조금은 진정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하지만 깊게 잠들 수는 없었다.





 사고 이후로 일상이 완전 망가졌다.


 매일, 매시간 규칙적으로 생활하던 생활패턴이 완전히 무너졌다. 후유증 때문인지 자꾸 피곤했다. 무언가를 할 의욕도 나지 않았고, 집중도 되지 않았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자고, 잠에서 깨고, 밥을 먹고, 일을 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일상을 잃고 나서야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나와 아내의 몸에는 큰 문제가 없다. 내게 나타났던 증상들은 다 사라졌고, 아내에게 나타났던 증상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교통사고를 당했는데도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에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전에는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다. 무단횡단을 한 것도 아니고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에 건너는데 교통사고를 당하다니. 게다가 운전자는 술까지 마신 상태였다. 앞으로는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조심하게 될 것 같다. 이것이 약한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큰 일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잘 이겨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날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 만큼 앞으로는 일상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당연한 것 같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상을 말이다.


 혼자였다면 아마 쉽게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였다. 부부란 이렇게 서로에게 기대기도 하고,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내기도 하는 관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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